민족사랑으로 이어진 복음실천


‘일(一)’자에 새긴 이름, 민중을 위한 헌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 이 율법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장 39절)


강화중앙교회의 시작은 단순한 종교 조직의 탄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삶이 되고, 믿음이 사랑이 되어 세상을 바꾸는 변화의 씨앗이 뿌려진 사건이었습니다.

‘일(一)’자에 새긴 믿음의 이름들


1900년, 교회가 세워지던 당시 개척 교인들은 복음을 실천하는 결단으로 이름에 ‘일(一)’자를 넣었습니다.

주선일, 김각일, 김봉일, 허진일, 최족일, 박능일…

그들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하나 된 형제’라는 믿음의 서약이었고, 거듭난 새 삶의 표지였습니다.


그들은 관청의 호적 이름까지 바꾸는 용기 있는 실천을 통해, 조선의 위계 중심 사회에서 복음 안의 수평 공동체, 형제 공동체를 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 여 선교회 회원

1930년대 여 선교회 회원

심령 대 부흥회

심령 대 부흥회


노비를 자유인으로 해방하다


이 복음의 실천은 단지 말과 이름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당시 강화도 김씨 가문의 부인은 자신이 거느린 노비들을 교회로 데려와 함께 예배드리게 하였고, 마침내 모두를 자유인으로 해방시켰습니다.

이는 조선의 신분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복음이 선포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존귀한 존재라는 믿음의 실천이었습니다.


“이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장 28절)

복음은 사람을 품었고, 교회는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낮은 자에게 존엄을 선포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라운몽 장로 심령부흥회

라운몽 장로 심령부흥회

부흥회 후 교회 마당

부흥회 후 교회 마당


억압의 상징을 무너뜨리다 – 김각일과 상청 철거


김각일 집사는 복음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불의한 권위의 상징이던 ‘상청’을 스스로 허물었습니다.

‘상청’은 양반 집에서 노비나 아랫사람이 위를 지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든 높다란 구조물로, 사람을 차별하고 위계를 고착시키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는 “주 안에서는 모두가 형제요, 차별이 없다”는 말씀을 따라, 자기 집의 상청을 허물어 복음의 평등을 자기 집 안부터 실천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철거가 아닌, 복음에 순종한 신앙인의 결단이었습니다.